신성대   이경명   김정록   김혁출   고성규   김용철   이호철   이지성   이송학   이창후   고영정   기고   역사산책   무협소설   무예이야기   축사
편집 2024.04.27 [16:01]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섹션이미지
신성대
이경명
김정록
김혁출
고성규
김용철
이호철
이지성
이송학
이창후
고영정
기고
역사산책
무협소설
무예이야기
축사
공지사항
회사소개
광고/제휴 안내
개인보호정책
청소년보호정책
기사제보
HOME > 칼럼 > 이경명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밴드 네이버
이종우 vs 엄운규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기사입력  2011/11/08 [13:39]
광고
이종우, 엄운규는 살아있는 태권도계의 전설이다.
 
아무도 두 분의 태권도사적 삶의 길에 이의를 달 수 없을 것이다. 태권도=이종우 vs 엄운규는 오늘의 태권도 존재를 가능하게 한 역사적 실존 인물이다. 한 분은 조선연무관 권법부에서 또 한 분은 청도관에서 무예를 익힌 2세대들이다.
 
이제 두 분은 세월의 흐름에 앞을 내다보는 혜안보다는 걸어온 자기 삶에 가치를 찾고 위안을 느끼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점에서 회고록이나 자서전을 남겨야 할 오늘내일의 시점에 있다.
 
회고록은 역사의 교훈서이자 반성문이 될 수 있다. 기록하는 문화의 장점이다.
 
▲ 자료사진. 엄운규(左)와 이종우(右)     © 한국무예신문
원로로서 한 사람은 지도관 출신이고 한 사람은 청도관 출신이다. 관이 통합되기 전 두 분은 1945년 광복 이후 5대관 가운데 중추적 역할을 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관의 통합에 따른 태권도 발전에 기여한 측면은 공이지만 과(허물)도 없는 바는 아니다.
 
다른 점이라면 지도관 관장 계보는 바뀌어졌지만 청도관 관장직은 엄운규 그 이후는 변함이 없다. 관 통합이후 오늘에 와서 관을 거론한다는 자체가 뭣하기도 하지만, 관의 존재 및 그 가치, 즉 태권도사적 평가가 없다는 것이 아쉽다.
 
‘태수도’ 명칭 제정에서 막후 노력은 두 사람의 몫이었다. 그리고 협회 창립에 이르는 과정에서 두 분의 노력은 막중했다. 명칭을 둘러싸고 공수니 당수니 그 뿐이 아니었다. 권법이니 태권도 등 여러 이름을 들고 나와 ‘태수도’ 이름 탄생의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70년도에 당시 우리들 세대는 이런 질문이 화두였다. 두 분 가운데 누가 더 IQ가 높을까? 답은 무승부였다. 머리회전 등 두 분께서 아주 명민하다는 평가다.

하지만 이종우 vs 엄운규는 동상이몽의 길을 걸은 듯하다. 이종우는 기술적 측면에 집념하고 엄운규는 행정직 측면을 선호했다는 평이다.
 
두 분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 평가할 때 크게 어긋나지 않다는 후문이다. 이종우는 기술 및 이론에 기여했는가 하면 엄운규는 행정직에서 잠시도 자리를 비우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종우는『태권도 교본 품세편』(1972)을 펴낸다. 비록 지은 이는 아닐지라도 엮은 이로서 크게 이론화 작업에 기여했다. 최초의 공인 교본이 간행된다. 반면 엄운규는 행정직에서 꼿꼿이 살림을 맡아왔다.
 
두 분은 세계태권도연맹(WTF, 총재 김운용)에서 총재를 보좌하며 부총재로서 시계추의 역할이었다. 김운용의 우산아래 각기 이종우는 실무 이론화, 엄운규는 행정을 주로 맡았다. 앞의 분은 태권도 이론 정립과 전자호구 시스템 구축이 염원이었다면 뒤의 분은 행정 수장이 되는 것에 집념한 듯하다.
 
그런 측면에서 이종우는 품새 이론화 및 경기규칙과 심판 이론 등에 기여한다. 반면 엄운규는 태권도협회 및 국기원 부원장을 지내면서 결코는 김운용의 뒤를 이어 원장 겸 이사장을 두 차례나 지낸다.
 
그렇다고 두 분의 허물은 전혀 없다고 할 수 없다. 예컨대, 이종우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후 신동아 기자(육성철)와의 인터뷰에서 올림픽에서 심판의 부적절한 행위, 초창기 태권도는 가라데의 변형이라는 유입설을 주장한다. 당시 그는 국기원 부원장으로서 ‘태권도 과거 충격적 고백’을 폭로했다(신동아, 2002. 4).
 
엄운규는 두 차례나 국기원 원장을 지냈지만 손에 꼽을 만한 업적은 없는 듯하다. 이승완과 줄다리기에서 2001년 11월 19일 국기원을 홀연히 떠난다. 그리고 다시 국기원에 복귀한 후 2009년 9월 23일 임기만료로 물러난다. 그가 국기원 원장 시 인재등용에 거스르는 인사정책은 실패였다. 해서 그들로부터 모반(謀反) 당하는 수모 등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했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밴드 네이버
기사입력: 2011/11/08 [13:39]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 도배방지 이미지

관련기사목록
[이경명칼럼] 글쓴이에게 던지는 화두: 문화에는 종주국(宗主國)이란 없다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2012/01/17/
[이경명칼럼] 문화재 택견 vs 스포츠 택견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2012/01/16/
[이경명칼럼] 논문집:「국기원 태권도연구」 vs 「무예연구」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2012/01/12/
[이경명칼럼] 해동검도 창시자: 김정호 vs 나한일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2012/01/10/
[이경명칼럼] 특공무술 vs 경호무술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2012/01/03/
[이경명칼럼] 한국 무예 중흥의 해 2012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2011/12/30/
[이경명칼럼] 수(數) vs 태권도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2011/12/27/
[이경명칼럼] 색채 vs 태권도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2011/12/22/
[이경명칼럼] 한글 vs 태권도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2011/12/20/
[이경명칼럼] 태극기 vs 태권도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2011/12/19/
[이경명칼럼] 태권도 기술용어 '겨루기준비와 겨룸새'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2011/12/15/
[이경명칼럼] 태권도, 한류 그리고 문화산업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2011/12/14/
[이경명칼럼] 태권도기술용어, 딛기 vs 짓기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2011/12/13/
[이경명칼럼] 합기도 vs Aikido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2011/12/11/
[이경명칼럼]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거다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2011/12/10/
[이경명칼럼] 태권도와 이대순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2011/12/07/
[이경명칼럼] 태권도한마당 & 강원식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2011/12/07/
[이경명칼럼] 본국검 vs 검도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2011/12/06/
[이경명칼럼] 태권도 & 리더십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2011/12/05/
[이경명칼럼] 국기원 vs 태권도진흥재단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2011/12/02/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최근 인기기사
광고
광고
광고
  회사소개광고/제휴 안내개인보호정책청소년보호정책기사제보보도자료기사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