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보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동물들 중에서 육체적으로는 가장 허약하지 않을까? 털까지 없어 추위에 감기 몸살을 달고 살았을 테고,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먹다보니 배탈도 많았으리라. 맨살 피부는 상처를 잘 받아 각종 세균에 무방비 상태였다. 덩치는 커서 겁도 많고, 혼자 힘으론 사냥이나 방어도 어려워 무리지어 살다보니 스트레스도 많았으리라.
다른 짐승들에겐 없는 온갖 질병을 앓다보니 무리 중 누군가가 외상(外傷) 없이 아프면 모두 귀(鬼)의 탓이라 여겼다. 특히 기후나 음식, 혹은 꿈 때문으로 생기는 질병은 귀신을 의심할 수밖에는 달리 해석할 도리가 없었다. 그들은 짐승을 잡아먹으면 그 영혼도 자기 몸에 따라 들어온다고 생각했다. 해서 배탈이나 병이 나면 잡아먹은 동물의 영혼이 몸 안에서 자신을 해코지하는 것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무리의 지도자는 이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해야 했다. 궁리 끝에 온갖 주술(의술)이 개발된 것이리라. 당시 주술사는 내과, 외과, 정신과까지 다 봐야했다.
잡아먹은 짐승의 귀(鬼)를 쫓아내려면 같은 짐승들로 유인해 내거나 평소 그 짐승이 무서워하던 더 큰 짐승으로 위협해야 했는데, 산 맹수를 데려다 부릴 수는 없는 일, 해서 궁리해낸 게 바로 자신들이 걸치고 있던 그 짐승의 털가죽이었다. 그 가짜 탈(鬼)을 쓰고 맹수 흉내 내는 춤을 추자, 어라? 비몽사몽을 헤매던 환자가 화들짝 놀라 일어나는 것을 보고 그에 붙었던 진짜 귀(鬼)가 도망을 갔다고 여겼으리라. 그런 경험은 인간으로 하여금 탈 외에도 보이지 않지만 다른 수많은 귀(鬼)들이 도처에 숨어있을 거라는 확신을 갖게 했으리라.
그리고는 그 많은 귀(鬼)들이 공통적으로 무서워하는 가장 큰 귀(鬼)를 찾다보니 결국 하늘귀신을 신(神)이라 하여 자신들의 수호신으로 받들게 된 것이리라. 이후 귀(鬼)와 신(神)의 본격적인 투쟁이 시작되고 신화‧예술‧제사가 발달하면서 인간사회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나누어진다. 비로소 종교다운 종교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신(神)의 이름으로 끝없이 전쟁을 치르면서 과학을 발전시키고 역사를 써나갔다. 더불어 신앙은 곧 신념이 되어 철학(현학)을 발전시켰다.
그러고 보면 짐승의 ‘털’에서 ‘탈(가면)’이 나오고 이어 ‘틀’이라는 용어가 생겨난 것이리라. ‘배탈났다’고 할 때의 ‘탈’ 역시 잡아먹은 짐승의 귀신이 부린 농간으로 뜻밖의 사고나 병, 이후 트집이나 핑계의 의미인 ‘탓’으로 확장되었을 것이다.
아무려나 귀신이 없었다면(비겁하게 사는 법을 익히지 못했더라면) 인간이란 종족은 진즉에 자연계에서 도태되었을 것이다. 요즘도 요상한 기기를 만들어 들고 다니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귀신을 만들고, 귀신들을 사냥하고, 귀신들과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귀신 없이는 무슨 재미로 산담?
인간도 신(神)이 될 수 있을까? 인간은 언제부터 왜 수행을 하게 되었을까? 고대인들은 꿈이 허구란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하여 꿈을 통해 육신이 없는 영혼세계의 존재를 확인하고, 자신도 죽으면 당연히 조상들이 먼저 가 있는 그곳으로 가 다음 삶을 살아야하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니까 인간은 자신을 반(半)신 반(半)동물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자신(영혼)이 인간이라는 동물의 육신을 빌어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하늘로 올라가 진짜 신(神)으로 살기를 갈망하여 지금도 하늘(神)에 빌고 또 빌고 있다. 그걸 ‘구원’이라 한다. 구원받지 못하면 영원히 쫓기고 쫓기는 삶을 살며 윤회의 바퀴를 돌려야 한다.
허나 인간은 비겁한 동물! 궁하면 트인다고 별종들이 나오기 마련! 일찍이 인간들은 신(神)을 빙자하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권력을 쥘 수 있음을 확인하고 너도나도 신을 들먹이기 시작했다. 조상이 원래 맹수였는데 신과 교접해서 인간으로 태어났다거나, 신의 아들 혹은 신의 대리인으로 자처하는 인간도 생겨나고, 언제든 접신해서 신과 소통할 수 있다는 인간들도 무수히 생겨나기 시작했다.
헌데 영리한 인간에게 그게 말만으론 먹힐 리가 없다. 뭔가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초능력이나 신통력을 보여줘야 사람들을 믿게 할 수 있다. 하다못해 접신한 척 미친 흉내라도 내거나 남달리 극적으로 살아야 사람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귀신을 흉내내다보니 어느 순간 인간은 자신이 신(神)이 된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되고, 어쩌면 진짜 신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짐승에서 인간이 되었으니, 인간에서 신으로 승화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게 불가능하더라도 신적인 특이능력이라도 지닐 수 있다면? 신이 못 된다 해도 신과 비슷한 모습이라도 갖춘다면? 하여 신에 버금가는 성인(聖人) 성자(聖者)들이 생겨나 신보다 더 과한 대접을 받기도 하였다.그렇게 해서 성스러운 인간이 잡스러운 중생을 다스리게 된 것이다. 그 성스러운 인간은 죽어서 신이 된다. 그 신들은 당연히 친인간적이어서 오리지널 신들보다도 인간을 더 잘 이해하고 사랑하고 헤아려주기 때문에 더욱 추앙을 받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영육이원론의 입장에서 격한 금욕을 지킴으로써 순결한 영혼이 신과 합일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사고방식은 후의 그리스도교나 이슬람교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그리스도교에서는 묵상과 기도를 중심으로 하는 금욕적인 수행이 중시되었다. 반면 동양에서는 힌두교의 요가나 불교처럼 영육일원론의 입장에서 생리ㆍ심리적 훈련과 금욕이 혼백(魂魄)이 합일된 이상적인 상태(깨달음, 해탈)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수행의 종류로서는 고행, 정진, 참회, 기도, 순례, 좌선, 명상 등 다양한 방법을 들 수 있는데, 그 중에서 공통적으로 중요시한 것이 금욕과 금식(단식)이다. 성(性)을 극복함으로써 ‘인간(짐승)’이서 일탈하고, 금식의 고행으로 ‘죽음’에 접근함으로써 신(神)에 가까이 다가가 영적으로 변신코자 한 것이다. 아무려나 신이 되기 위해서는 사는 방식부터 여타 인간들과 달라야 했다. 해서 먼저 재산·성욕‧식욕 등 인간적인 욕망에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고 여겼었다. 어차피 신이 되면 육신을 소유하지 않으니 그런 건 필요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