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구 이미지. 레이싱걸 당구대회.(출처:Naver) | |
“사, 사부님!”
“그래도 나는 우리 일월문의 구예(球藝)가 절대 약하지 않음을 믿었다. 사부께서 전수한 외에도 우리 형제들은 연구를 거듭하여 새로운 무공을 창출하기 직전이었거든. 그야말로 가장 무술의 원칙에 가장 충실한 새로운 구예를… 그 주축이 되었던 인물이 대사형인 네 부친과 막내인 신당묘수(新堂妙手) 남궁기(南宮奇)였다. 그런데 네 부친은 자진을 했고, 얼마 후 남궁기는 갑자기 사라지고 만 거야. 나는 셋째인 신사신사(新沙紳士) 유승인(劉承仁)과 함께 종적이 묘연한 막내를 찾아 우리가 연구하던 구예를 완성시켜 삼마와 재대결을 하고자 했다. 하지만 도저히 막내를 찾을 수 없었고, 기다리다 지친 신사신사는 결국 출가(出家)하고 말았지. 나 역시 앞날을 고민하던 차였는데… 내 어머니의 부탁으로 너를 맡게 된 것이다.”
어머니! 얼마나 부르고 싶었던 이름인가?
상천은 수 년 동안 잊고 살았던 아니 떠올릴 겨를조차 없었던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설움이 복받쳤다.
뇌리에 각인처럼 남은, 하얀 치맛자락을 눈꽃처럼 휘날리며 달음질치듯 무관을 나서는 어머니의 슬픈 뒷모습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저를 사부께 맡기시면서… 뭐, 뭐라고 하셨나요?”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너를 잘 키워 사형의 원수를 갚게 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도 강호에서 힘을 키워 반드시 네가 복수하도록 돕겠다고 했지.”
“그 뒤로 소식을 전해 오신 적은 없었나요?”
양봉환은 말없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사부님! 제 몸이 가루가 되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아버님의 원수를 갚겠습니다. 어머니도 찾고요.”
결연한 표정이 상천의 얼굴에 떠올랐다.
“당연히 그래야지. 그것이 또한 강호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기도 하니까…….”
양봉환은 상천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요 며칠 동안 내가 계속 외출을 한 것은… 얼마 전에 열린 다마조사배(多磨祖師杯) 비무대회를 참관하기 위해서였다. 과연 요번에는 누가 나왔는지, 누가 우승을 하는지를 살펴보아야 대비를 할 수 있기에 죽 지켜본 것이지. 혹시라도 삼마의 눈에 띌세라 역용(易容)을 하고서 말이다.”
“그래서… 아침 일찍 나가셨다가 밤이 늦어서야 돌아오셨군요.”
“다마조사를 기리는 비무대회는 오래 전에 맥이 끊겼다가 전란이 끝나고 10여 년이 지난 무력 1425년부터 매년 십이 년 간격으로 다시 열려 왔다. 주로 삼구(三球) 비무를 하므로 3월 9일에 결승전을 치르지. 시작은 3월 2일에 하고… 네 아버지는 유신 연간인 무력 1449년에 우승을 했다. 오판삼선승제였는데… 마지막 판에서 극적인 성공을 거뒀지. 그것도 역전승(逆轉勝)으로 말야. 그리고 보니 벌써 십이 성상(星霜)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구나.”
“이번에는 누가 우승을 했습니까?”
“올해는… 역시 삼구지존의 전인(傳人)인 즉방금마 구루몽이 우승을 했다. 하지만 즉방금마의 추종자들이 그를 우승자로 만들기 위해 방해공작도 하고, 조작시합(造作試合)을 했다는 얘기가 있다.”
“조작시합이라뇨? 일부러 져주기도 한다는 말입니까?”
비무에서 일부러 져준다는 것은 상천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렇다. 마교(魔敎)의 인물이거나 또는 그에 포섭된 사파인들이 일부러 져주는 것이지. 일단 세력을 장악하면 마교를 전파(傳播)하기 쉬워지니까 말이다. 구루몽은 이번 대회에서 우승을 하여 마교의 교주(敎主) 자리에 올랐다고 하더구나.”
“구술인의 양심마저 버린 간악한 무리들 같으니!”
분에 못 이겨 주먹을 부르르 떠는 상천을 보며 양봉황은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구루몽이 실력이 부족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즉방금마는 오히려 스승을 능가하는 공력을 지녔어. 다만 스승보다 더욱 패도적이기에 후환(後患)이 두려운 이들이 지레 겁을 먹고 스스로 포기했을 수도 있겠지. 그리고… 구루몽 외에도 놀라운 신예들이 많더구나. 다음 대회가 열리는 십이 년 후라면 틀림없이 절정고수가 될 만한 재목들이야. 너는 쉬지 말고 실력을 닦아 그들부터 능가해야 해. 구루몽과 맞서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