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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불언(食不言)이면 글로벌 세계에선 왕따
테이블 매너는 물리적인 취식(取食) 에티켓이 아니고 적극적 소통을 보장, 촉진하는 도구. 외국선 식사자리가 비즈니스이자 외교. 글로벌 매너로 세계로 나가야
 
신성대 주필(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기사입력  2013/03/24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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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성대 주필     ©한국무예신문
장시간 디너가 끝나고 배웅을 하면서 주인 부부 왈 "그렇게들 배가 고팠었어요? 그래서 남은 음식 몇 가지를 좀 담아봤으니 가져가세요." 국내 각계 지도자들을 상당수 제자(?)로 두는 한편, 당시 모 대학 총장에게 극찬까지 받고 이명박 대통령 표창장까지 받은 어느 미식문화 전문가의 프랑스 유학 시절 회고담이다.
 
옆집 프랑스인 부부가 그들의 친구들과 함께 자기까지 집으로 초대해 벌어진 일이라 한다. 아닌 밤중에 '배고픈 동양 유학생'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며 아직도 분개하고 있는(?) 이 해프닝의 발단은 자기 생각에는 한국식 식사예절의 기본인 '식사 중에는 말하지 말라'는 '식불언(食不言)'의 가르침을 잘 지켰다는 데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인 부부 생각에는 저 친구가 그동안 얼마나 허기졌으면 그토록 긴 식사시간 내내 대화도 없이 음식만 조용히 먹느냐는 것이었다.
 
이율배반의 웃지 못할 넌센스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더 큰 문제는 그런 사람이 '로마에 가서는 로마식을 따르라'는 글로벌 선진문명사회의 금언을 어기고 한국식 식불언을 프랑스에 가서도 강행하다가 망신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반성적 성찰은 보이지 않고, 지금도 국내에서 ‘테이블 매너가 글로벌 경쟁력’ 운운 강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식불언에 담긴 아주 불편한 진실
 
여기서 일단 식불언의 유래를 확실히 알아보기로 한다. 식불언은 조선시대, 즉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손자 그룹, 하인 하녀, 행랑채 손님, 노비 등 최소한 7 단계의 신분으로 구성된 대가족제도에서 총인원수에 비해 식기와 밥상 및 반찬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같은 반찬의 밥상을(일인당 밥과 국, 수저만 바뀌는) 최소한 5회 이상 돌림상하는 과정에서 회전율을 높이기 위한 궁여지책의 편법이었다.
 
정부 관공서도 실정은 마찬가지. 점심 때 각자가 15분 남짓 재빨리 번갈아 먹었는데 수저와 밥그릇, 국그릇 씻고 퍼담는 시간 또한 만만치 않아 경복궁 근정전의 경우 당상관, 당하관, 주사 서기급, 하위직, 여직원, 일용잡급, 민원실 손님, 노비 그룹, 미결수 등 대략 15단계의 식사 신분 그룹별 식사에 따라, 전체로는 3~4시간이 걸려 오후 업무가 자주 마비되는 등 폐해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 문제로 선조 시절 이율곡 선생이 시정할 것을 상소하였으나 재정 현실을 감당할 수 없어 유야무야 되었다고 한다.
 
문제는 정작 21세기 현대에 와서다. 수많은 한국 젊은이들이 해외로 공부하러 나가지만 이들이 목적하는 바는 영어 혹은 현지어 습득과 학위 취득이다. 간혹 봉사나 특별한 기술을 익히기 위한 유학도 있다. 하지만 모두 거기까지다. 그 목적한 바를 이루게 되면 도망치듯 한국으로 돌아온다. 유학한 현지에서 자리를 잡고 그들과 함께 사는 이는 불과 몇 되지 않는다. 한국인을 넘어 세계인으로 살아갈 용기도 능력도 없는 게다. 세계를 제패하러 나간 게 아니라 한국에서 행세하기 위한 영문증(證)이 필요했던 거다.
 
쫓겨 돌아오는 한국의 젊은이들
 
대부분의 한국 유학생들이 현지의 주류사회에 동참하지 못하고 외톨이가 되거나, 한국 유학생들끼리만 어울려 놀다가 겨우 공부를 마친다. 설사 그곳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학교나 연구소 등에 취직을 했다 하더라도 그다지 오래 버티지 못하고 스펙쌓기만 끝나면 좋은 자리를 찾아 국내에 들어온다. 반대로 국내에서 공부하고 어렵게 외국 회사에 취직했다 하더라도 대부분 얼마 못 견디고 되돌아온다.
 
외국 생활이 적성에 안 맞는다고들 하지만 실은 본인도 그 원인을 잘 모르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원인을 알면 고쳤을 테지만 그걸 모르니 고치지도 못하고 맥없이 쫓겨 들어오는 것이다. 공부 스펙으로 보면 그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우수한데도 불구하고 자신에 대한 박대가 동양인에 대한 차별이라고 지레 짐작하는 게다. 과연 그럴까?
 
아니다. 모두 무지거나 거짓, 혹은 변명일 뿐이다. 진짜 이유는 현지인들과 융화되지 못한 것이다. 유학중에 학교 공부만 했지 적극적으로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적응, 융합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식사 문화, 즉 테이블 매너에 대한 무지가 가장 큰 원인이다. 고작 ‘좌빵 우물, 좌포크 우나이프’ 정도의 상식도 아닌 상식을 식탁매너인 줄 알고 물 건너갔으니 밥 한 끼 못 얻어먹고 쫓겨오는 건 당연한 업보. 식불언은 그 한 예라 하겠다.
 
글로벌 출세의 시작과 끝, 모든 것은 식탁에서
 
세계적으로 아주 유명한 M투자은행의 어느 해 연차보고서에 직원을 ‘대거’ 열두어 명 뽑았다고 자랑하는 내용이 책자 맨 앞부분에 대형 연수 장면 사진과 함께 나와 있어 의아해했던 적이 있다. 수백 명을 채용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고작 열두어 명이라니?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들이 말하는 직원이란 회사의 브레인 계층, 즉 오피서 그룹을 말하는 것이었다.
 
글로벌 우량기업에선 평사원이나 하위직 종사자와 같이 기계 부속품처럼 수시 교체가능한 사람들은 인적 코스트(human costs·물격체)라고 부르고, 의사결정권을 지닌 브레인 계층으로 낙점된 이른바 패밀리급을 원래 의미의 직원(employees·인격체)이라고 부른다(1만여 명 중 3백여 명만!). 이 직원들을 채용할 때 3차 시험은 반드시 파트너급 임원과의 오찬 면접으로 치러진다.
 
대략 한 시간 반에 걸친 런천(luncheon) 동안에 구사되는 입사희망자의 테이블 매너를 보고, 먼저 1차 때 제출 서류에 기재된 사실의 진실성과 2차 때 필기시험 내지 에세이에 주장된 내용의 역량 수준을 재검증하고, 이어서 전문가로서 사회적 인격체 성숙 정도 및 회사를 대표하는 이로서의 사교성 수준을 테스트한다.
 
이를테면 인성과 사회성, 배운 지식을 현실화시킬 전문가적 역량, 지속 가능성 등. 이어서 식사 습관에 부정적인 요소가 없는지, 파티에서 누구나가 친숙하게 가까이 하고 싶은 매너를 지녔는지, 어떤 상대 기업의 식사 초대에 나가도 문제가 없을지 등등. 회사의 대표로서 각종 행사에 참석하여 회사 이미지와 품격을 높여 줄 수 있을지.
 
세부적으로는 식사를 하면서 몸자세가 올바른지, 시선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시야가 얼마나 넓은지 등도 빠뜨리지 않고 살핀다. 냅킨을 펴고 접는 것에서 식사 내지 비즈니스의 흐름구조가 제대로 체화되어 있는지 확인한다. 가령 떨어뜨린 음식이나 도구를 처리하는 것을 보고 위기관리능력을 체크하고, 식당 종업원을 어떻게 부르고 주문을 하고 감사표시를 적절하게 하는지를 보고 나중에 사원이나 고객들을 다룰 수 있는 내공을 짐작하고 채점한다. 이렇게 테이블매너라는 프레임으로 통상 42개 항목을 체크한다.
 
식사면접에서 '먼 훗날'의 운명이 벌써 결정
 
일반직에겐 그런 면접시험이 없다. 비즈니스 런천(luncheon)이란 정격 레스토랑의 비교적 격식 있는 오찬을 말한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간이식당이나 길거리에서 샌드위치, 햄버거 등 패스트푸드로 점심을 때우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인적 코스트(human costs), 즉 일반직들이라고 보면 된다. 그들에겐 괜찮은 오피서들과의 런천을 할 기회가 퇴직할 때까지 전무하다. 법인카드나 회사돈으로 점심 먹을 일 없다는 말이다.
 
한국식의 학력에 따라 일괄 단체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타는 간부급사원 채용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한국은 아직 똑같은 학력으로 똑같이 입사하여 같은 출발선에서 경쟁해 근무 연한에 따라 직급이 반자동 올라가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고, 실제로도 대부분 그런 식으로 기업이 운영되고 있지만 유럽과 미국에선 그렇지 않다.
 
이미 면접에서 집행부급 직원으로 결정되면 이후 줄곧 테스트하고 가르치고 훈련시켜 도제식으로 길러 나간다. 중상류층으로서의 전문가적 가치관과 오블리주(책임과 의무)를 제대로 지키고 있고 지켜 나갈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보고 처음부터 낙점해 키워 나가는 방식이다.
 
브레인급 관리직원인 이들은 바로 임원후보(executive candidates)로서 일반직과는 철저히 구분한다. 그들은 채용되자마자 목재마루에 그 유명한 ‘스티브 잡스의 청년 때 명상 장면’ 사진에 나와 있는 조명 조건 그대로, 노 형광등, 갓 달린 백열등 간접조명으로 키 큰 스탠드, 책상 위의 작은 스탠드가 있는 사무실에서 일하게 된다.
 
한국에서 나름 공부 좀 한다는 과학고, 민사고, 외국어고 나와 서울대, 카이스트, 하버드대학을 나온 많은 한국 젊은이들에게 이 오찬면접 기회란 언감생심. 혹 채용된다 하더라도 이미 단순 일반직으로 분류되어 버린다. 일반직에서 임원급으로 올라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드문 일인지는 간혹 국내에 소개되는 ‘성공한 한국인’들의 눈물겨운 경험담에서 엿볼 수 있다. 그나마도 비유럽권에서나 있는 일이지만.
 
식불언(食不言)이 불러온 글로벌 문맹
 
한국인들은 앞서 언급한 ‘식불언’이란 최단시간 내 식사를 마쳐야 할 압박감 아래서, 또한 식민시대에 설화(舌禍)의 예방을 위해, 불만 제기를 원초적으로 봉쇄하던 군사 및 병영 문화에서, 민주화시대에는 가정 내 언로 확대 요구를 눌러 놓기 위해 식사중에 말을 많이 하면 복(福)이 빠져 나간다 둘러대며 말없이 밥을 먹는 훈련을 하였다. 해서 조용히 고개 처박고(?) 먹기에만 열중하는 버릇이 생겼다. 서양인들의 시각에선 이들이 도무지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대통령이든 장관이든, 재벌 오너든 유명인사든, 한국인들이 밖에 나가면 제대로 사람 대접 못 받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다. 실례로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때 워싱턴 DC 현지 신문에 의회 연설 등 중요 방미 기사가 단 한 줄도 안 나와 버리는 불상사가 벌어질 정도가 되었다. 이전 방미 때 거금을 들여 전면 광고를 실어준 신문에서조차도. 하나를 보면 열 가지를 안다고 했다. 아래 사진 한 장이면 그 배경을 짐작하고 남겠다.
 
▲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 때 백악관 영빈관에서의 식사 장면. 모처럼 미국의 정책 리더들을 다수 초청하여 ‘깊이 사귀려 마련한 자리에서’ 고개 숙이고 먹는 데 열중하고 있는 한국 고위 관리들. (정 중앙) 김관진 국방장관, (1시 방향) 천영우 안보수석, (3시 방향) 한덕수 주미대사. <사진출처: 청와대 사진기자단> ⓒ 청와대 

게다가 한국인의 밥상에는 국이 빠지지 않는다. 이때 국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입을 최대한 국그릇에 가까이 붙이려다 보니 자연스레 상체를 구부리고 턱을 아래로 쑥 내밀게 된다. 서양인들은 물론 심지어 중국인들도 이런 자세를 매우 천하고 역겹게 여긴다. 심하게 표현하면 무슨 짐승으로 단정해 버리기 때문에 밥맛이 싹 가실 수밖에 없게 된다. 다시는 함께 식사하는 것은 물론 같이 놀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앉거나 서거나 걷거나 한국인들에게서 똑바른 자세가 나오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빨리빨리’ 문화에는 소통이 없다
 
한국인처럼 말을 가능하면 절제하고 집중해서 음식을 먹으면 남보다 빨리 후다닥 배불리 먹어치울 수 있게 된다. 가난했던 시절에 체화된 습성이다. 게다가 입속의 음식이 밖으로 튀어나올 염려도 없다. 당연히 밥 먹으면서는 대화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에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쓸데없는 이야기들만 나누게 된다. 해서 얼른 밥을 먹고 난 다음 자리를 옮겨 진지한 대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까짓 점심 한 끼 해결하는 데 한 시간, 혹은 그 이상을 보낸다는 건 가당치가 않은 것이다.
 
반대로 서양인에게서 식사는 단순히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처음 죽의 장막 중국을 찾았을 때, 자신의 오찬 상대로 앉은 허름한 양복을 입은 두 중국인을 보자 절로 얕보게 되었다고 한다. 헌데 막상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자, 그 테이블 매너며 교양, 그리고 동서양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에 놀라 감탄을 금치 못했었다고 그의 자서전에 기록하고 있다.
 
글로벌 사회에선 식사를 서로 소통하는 기회로 삼는다. 따라서 식사 시간 동안 끊임없이 대화를 나눈다. 배를 불리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 즐기는 것이 목적이다. 음식이나 와인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담론을 즐기는 것이다. 비즈니스 런천에선 직설적인 표현 대신 가벼운 식담(食談) 속에 협상과 거래의 메시지를 은근히 깔아 주고받는다. 음식에 집중하면 짐승 취급 받는다. 대화에 집중해야 한다.
 
가족간의 유대는 물론 아이들의 인성과 교양, 사회성도 ‘유대인의 공부법’ 그대로 모두 이 식탁에서 길러진다. 따라서 함께 식사를 해보면 상대방의 됨됨이를 고스란히 파악할 수 있게 된다. 한국인들은 식담(食談)이 안 되기 때문에 식사 한 끼로는 상대의 내공을 짐작할 줄 모른다. 해서 따로 술자리를, 그것도 2차 3차 폭탄주를 돌리는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조폭따라하기 음주문화가 한국적인 것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빨리빨리' ‘화끈한’ 문화에선 품격이 피어날 수가 없다. 절제 없인 품격이 없기 때문이다.
 
젊은이들 밥그릇을 차고 다니는 한국의 리더들
 
그동안 유학 다녀온 수많은 선배들이 유학중 단 한번도 현지 가정의 식사 초대를 받거나 정규 레스토랑에서 식사한 적이 없을 만큼 현지인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혹 식사 초대를 받았다 하더라도 두 번 다시 초대받지 못할 만큼 좋지 않은 이미지를 남겨 놓았다. 어차피 그곳에 눌러앉아 살 것도 아닌데 아무려면 어떠랴! 때문에 오늘의 한국 젊은이들이 유학을 가서도 지레 무시당하거나 모멸스런 대접밖에 못 받고 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유학 생활이란 원래 그렇게 하는 것인 양 전통으로 굳어져 버렸다.
 
유학을 다녀온 사람이나 안 다녀온 사람이나 서양인들과 오찬이든 만찬이든 함께하는 것을 두려워하기는 마찬가지. 해외 업무나 세미나 마치자마자 바쁘다는 핑계로 따로 놀다가 훌훌 귀국해 버린다. 그들과의 식사에서 매너와 대화가 자신 없는 게다. 가족이나 높은 분들을 위한 선물 챙기기에 바빠 제 돈(?)으로 밥 한 끼 사기가 아까운 게다. 인적 네트워크가 구축될 리 없다. 결국 마땅히 한국에 돌아와야 할 많은 우호적 정보와 기회, 그로 인해 파생될 이익을 놓치고 만다.
 
대권에 도전했다가 고배를 마신 한국 정치인들이 곧잘 외국으로 나가 자숙하는 척하는 게 이 나라의 전통처럼 관례화되었다. 헌데 재미없게도 그 중 누구도 그 나라의 유력 인사들과 식사하며 교제를 했다는 소문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아무 대학 기숙사 같은 곳에 숨어 지내다시피 하다가 때가 되면 슬그머니 돌아와 정치판을 어슬렁거린다. 핫도그나 햄버거, 샌드위치, 컵라면으로도 더 이상 못 버틸 지경이면 기어 들어오는 게다.
 
그나마 요즘은 안 나가고 동네에서 버티거나 나가도 백일도 못 견디고 들어온다. 우물 안에서는 그토록 기고만장하던 이들이 밖에 나가면 쪽도 못 쓴다. 국가를 위해 자신의 글로벌적 경륜을 보태려야 보탤 것도 없는 빈 깡통들, 혹시나 국가의 위상에 무임승차하여 대한민국이 피땀으로 쌓고 다져온 거대한 역량을 마치 제 것인 양 휘두르고 누려 보겠다는 얌체들. 한국인들은 몰라도 눈 밝은 세계인들은 그 속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다. 하여 유명 스포츠 선수나 가수만도 관심을 안 두는 게다.
 
밖에 나가 밥도 한 끼 제대로 얻어먹을 줄도, 살 줄도 모르는 한국의 지도자들. 그들의 개망신으로 인한 한국인의 평가절하가 결과적으로 미래에 그 판에 나가 먹고 살아야 하는 젊은이들 밥그릇을 걷어차고 있다. 당사자들조차 밥 못 얻어먹는 원인을 모르니 후배들을 제대로 가르칠 리 만무. 그러니 그 잘난(?) 선배들이 ‘개판’쳐 놓은 그곳으로 오늘도 수많은 기러기들이 줄지어 날아 오고가는 게다. 그것도 모르고 뼛골 빠지게 벌어 유학비 보내는 기러기아빠들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게 현실! 스테이투스 쿠오(Status quo)! 있는 그대로다!
 
밥상머리 교육은 식필언(食必言)에서부터
 
국내에서건 국외에서건 자녀교육에 성공한 가정은 예외 없이 밥상머리 교육에 철저했다.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는 유대인들의 자녀교육도 이 밥상머리에서 이뤄진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듯 훈장도 제 자식은 못 가르친다고, 한국은 전통적으로 자녀교육은 서당교육이었다. 해서 좋은 학교, 비싼 과외, 조기유학 보내는 게다. 그래야 부모의 도리를 다하는 줄 안다.
 
사실 진정한 지혜는 책에서 얻는 것이 아니다. 책 공부는 그냥 알음알이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 세상을 보는 지혜, 실제 살아가는 지혜는 현장, 매일의 생활 속에서 깨우치고 배우는 법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지식이지 지혜가 아니다. 지혜나 교양, 매너는 부모가 밥상머리에서 가르쳐야 한다. 학교 보내 공부시키고 결혼시켜주고 집 사주는 것으로 부모의 의무를 다하는 것으로 착각하면 오산이다.
 
먼저 식불언(食不言)을 고쳐 보라. 가족이 매일 한 번쯤은 식탁에서 함께한다. 그때 반드시 각자가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씩을 준비하도록 한다. 그날이나 전날 보고, 듣고, 읽고, 생각하고, 체험한 이야기나 유머, 수수께끼, 썰렁 개그도 좋다. 뭐든지 하나씩 준비해서 식사중 털어놓도록 해보라. 차츰 식사 시간이 길어지고 가족간의 대화가 잦아지며 가족성이 눈에 띄게 달라진다.
 
밖에 나가서도 아이들이 차츰 자기 주장을 편하게 터놓게 되고 사교성도 좋아진다. 당연히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남을 괴롭히지도 않게 된다. 아이들이 발표를 못하거나 면접관 앞에서 떨고 더듬거리며 식은땀을 흘리는 건 온전히 부모의 잘못이다. 식필언(食必言)! 장담컨대 두세 달이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
 
우물 밖이 두려운 개구리들
 
식구(食口)란 가족 혹은 공동체의 또 다른 표현이다. 한솥밥을 먹는다는 것은 가족으로, 친구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유학을 가서 그곳 중상류층 사람들과 식사를 즐긴다는 것은 이미 그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자격을 얻어냈다는 뜻이다. 파트너든 경쟁자든 동반자가 될 수 있음을 인정받은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 대접받게 되었다는 거다. 졸업장이나 자격증만으로는 결코 그들과 함께 식사할 수 없음을 몰랐다면 헛공부한 거다. 미국까지 날아간 안철수가 빌 게이츠에게 인증샷 사진 찍지 말라고 면박당한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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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 지도자들과 달리 이 나라에서 벼슬 좀 했던 사람들 대부분은 퇴임 후에 밖으로 나갈 일이 도피와 관광 빼놓고는 거의 없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세계의 지도자들과 오피니언 리더들을 만나고 함께 일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중 누구도 퇴임한 한국 관리를 거들떠보지 않는다. 재임중 직분 때문에 업무상 만나 어쩔 수 없이 악수하고 식사했을 뿐, 개인적인 친분은 전혀 쌓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업무적인 만남에서 이미 됨됨이를 파악했기 때문에 두 번 다시 아는 척하기 싫은 것이다.
 
▲ 미국 대통령부인 미셸 오바마가 땅끝 남아프리카까지 날아와서 환대해줌을 누리며 사는 넬슨 만델라 <사진출처: 백악관> ⓒ 백악관

한국에 파견되어 근무한 외국 공직자나 상공인들 중 일부 관대한 사람들은 한국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반면에 드러내놓고 말은 안했지만 그 외 대다수 많은 이들은 한국 근무에 대해 그다지 즐거운 기억을 간직하고 떠나지 못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지옥과 같은 생활’이었다고까지 사적인 자리에서 토로하기도 한다. 간혹 글로벌 주류사회에서 이름이 알려진 성공한 한국인들이 왜 한국에 오는 것을 끔찍이 싫어할까?
 
얼마 전 새정부의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에 내정되어 한국을 위해 마지막으로 봉사하려고 용감하게 들어왔다가 지레 손사래치고 떠난 김종훈 씨의 심정을 이해할 만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물 안 개구리들이 메기나 거북이 들어오는 것을 환영할까? 글로벌 짝퉁과 청맹과니들이 판치는 한국에 그는 들어올 수도, 들어와서도 안 되는 사람인 게다.

글로벌 매너로 세계로 나가야
 
인정하기 싫겠지만 어느덧 한국 사회도 계급사회로 진입했다. ‘계급’이란 말이 거북하면 ‘등급’ ‘계층’ ‘신분’이라 하자. 부(富)와 직업과 지위가 세습되고 있다는 말이다. 지난날의 타성에 젖어 아직도 공평, 동등, 균등, 평등 사회라고 부르짖는 것은 어쩜 낙오자의 자위, 혹은 변명에 지나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차별은 없을지 모르겠으나 차등과 구별은 엄연히 존재하고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다. 그만큼 신분 상승이 어려워지고 있다.
 
계층을 구분하는 데에는 경제력, 사회적 지위 등 여러 기준이 있겠으나,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품격이다. 한국의 중상류층에게 부족한 것이 바로 이 품격으로, 그들이 그것마저 갖추는 날 계급사회는 굳건하게 자리잡게 된다. 그나마 남아 있던 신분 상승의 기회마저 사라져, 자자손손 그냥 소시민으로 살 것인지 중상류로 살 것인지는 개인의 선택일 수 없게 된다. 일평생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 단계 올라서기 쉽지 않다는 말이다. 그것이 선진사회이기도 하다.
 
아직도 정부가 말하는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고 믿는가? 다 거짓이다. 고작 허드렛일로 쪼개고 찢어서 숫자만 늘릴 뿐이다. 그나마 서민들의 하위 직종에서다. 고급 직종은 감히 손도 못 댄다. 그런 걸 듣기 좋은 말로 '복지'라 부른다. 그 복지일자리 혜택 한 번만 받게 되면 그날부터 그는 하층민 내지는 소시민으로 전락하게 된다. 해서 복지를 '자본주의의 마약'이라고도 부르는 게다. 약도 되고 독도 되는 게 마약이다. 아르바이트하려고 태어난 인생이 아니지 않은가? 세계가 하나인 시대다. 왜 굳이 국내에서만 일자리를 찾으려 하는가?
 
품격에선 동서양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테이블 매너 역시 마찬가지다. 저 사람과 함께 식사하면 즐겁겠다! 함께 식사하고 싶은 사람, 어떤 분야 누구와도 저녁 먹으면서 서너 시간 즐겁게 담소를 나눌 만한 교양과 매너를 갖춘 사람이라면 글로벌 주류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 제대로 배워야 제대로 산다. 사람답게 산다.

부활절이다. 서구인들은 여름휴가 다음으로 긴(대개 1주일) 휴가를 즐긴다. 해외의 친구들과 부활절에 카드를 주고받지 못했다면 당신이 일 년의 대부분을 해외에서 보낸다 해도 결코 글로벌 인물이라 할 수 없다. 크리스마스에는 가족이나 친지들 간에 주고받지만, 친구나 사업상 동반자들에게는 부활절에 카드를 보낸다. 내년에는 잊지 말고 부활절을 축하하고 즐겁게 휴가를 보내라는 카드를 보내보라. 한국에도 이런 친구가 있었나! 하고 달리 볼 것이다. 반드시 피드백받게 될 것이다.

<이 글은 데일리안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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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3/24 [15:36]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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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소정 2013/05/03 [06:15] 수정 | 삭제
  • 안녕하세요 유럽에 유학온지 8개월 가량 된 유학생입니다. 처음 시작한 외국생활에 좌충우돌, 시행착오도 많았던 지난 시간이었습니다. 우연히 대표님의 글 "글로벌 개망신 정치인들, 밥 먹을줄 몰라 왕따"라는 글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표님의 입장에 저는 깊이 동감합니다. 여기와서 가장 힘든 건 "대화"의 문화이고, 특히나 식사문화입니다.

    저는 MBA 과정 특성 상 사교나 네트워크를 위한 시간이 많습니다.사실 이런 부분이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만,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단시간안에 밥을 먹고 대화는 거의 하지 않았던 습관이 30년 넘게 몸에 배여있어 한계를 많이 느낍니다.

    원인을 분석해 보니 결국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해서 대화의 흐름을 자주 놓친다는 결론을 내렸고 언어공부에 좀 더 시간을 쏟으려 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언어에 앞서 체득해야 하는 기본소양, 품격, 식사매너에 관한 지식을 좀 더 습득하고 싶습니다만,..

    혹시 관련된 정보를 좀 더 습득할 수 있는 루트를 알 수 있을까요? 앞으로의 시대는 점점 더 글로벌한 시대로 변화될 텐데, 문화의 차이라고 한국의 방식만을 고집하기에는 소통이 안되고, 소득이 없는 경우가 자주 발견되어 바꿔야 할 것은 바꿔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외국사람의 눈을 바로 보고 이야기 하는데만도 6개월이 걸린 것 같습니다. 이제는 허리를 펴고 고개를 바로 들려고 합니다. 한국의 문화가 잘못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는 별로 효과가 없기 때문에 바꿔가야 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이 많은 잠재력이 있고, 인적자원과 기술이 풍부함에도 어찌보면 사소한, 하지만 긴 시간을 통해 형성되어 온 문화라는 큰 소양의 장벽을 넘어서지 못하면 한국이 가진 자원이 응당 받아야 할 가치평가를 받지 못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 하나쯤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이 부분에 대한 고민으로 매일 부딪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바쁘시겠지만 조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이평복 2013/03/30 [08:30] 수정 | 삭제
  • 며칠전엔 한국에 출장와서, 상해에서 긑 사업을 하는 40대 후반의 중국상인과 저녁식사를 같이 했는데,

    법치가 확립안되어 소수민족에 상점 세놓았다가 내보내지 못하는 상황, 625전쟁때 모택동 아들이 전사하는 바람에 북한식으로 가는 것을 피할수 있었다는 얘기, 류소기, 등소평, 중국과 필리핀의 영토분쟁 등등에 관해 글로벌 시각에서 냉철하게 분석하는 얘기를 무려 3시간여에 걸쳐 들었습니다.

    그냥 상인으로 알고 자리에 나갔다가, 어디 유명한 인사에게도 잘 듣지 못하는 중국 역사의 내막과 중국의 고민을 들을수 있었지요.


    상인이라고해서, 교수라고 해서, 공무원이라고 해서, 자기 맡은 일만 해서는 안되는 세상, 바로 그것이 글로벌 세계라고 봅니다.

    글로벌로 나가면 나의 매력을 어깨의 계급장이나 돈으로만으론 안되고, 말씀하신대로 3-4시간의 디너를 소화해 낼 만한 풍부한 화제와 식견과 매너가 필요하지요.


    결국 그것은 해외 매너책 몇권 읽어서는 될일은 아니고,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보고 세상에 대해 마음을 열고 새로운 것을 흡수하려는 치열한 일상생활이 반복되어야 가능한 일이겠지요.


    우물안 개구리들이 날뛰는 세상, 안철수같은 광대들이 이 나라를 쥐고 흔드는 세상이 참 답답스럽기만 합니다.


    우리 옆은 중국의 일개 상인 조차도 저토록 풍부하고 깊이있는 생각을 조리정연하게 토해 내는 실력을 갖추고 있는데, 우리의 지도자라는 사람들의 품격은 상인의 발가락에도 쫓아가지 못하니 말입니다.


    식탁에서 우리끼리의 화제조차도 내가 누구를 알고 누구와 동기고,,, 골프는 몇타치고 이 정도의 수준을 맴돌고 있으니 말입니다.


    제대로된 미래의 지도자를 키워내는 사회풍토가 조성되어야 할텐데, 북한보다 더 무서운 것은 딴따라 풍조에 물들어가는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생각되어, 참 걱정스럽기만 합니다.


    하여간 글 잘 읽었습니다. 이 딴따라 사회를 향해 경종을 울리는 좋은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이평복 배상
  • 강상욱 2013/03/30 [08:26] 수정 | 삭제
  • 하나하나가 마치 말로 회초리를 날리시는 것 같네요.



    하나하나 제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그런 지적들이었습니다.



    '아이구, 이렇게 천박하게 살았었구나 그런줄도 모르고 내가 누굴 나무라고 있었다니..... '



    저 역시 해외출장으로 많은 나라를 다닌 일이 있는데 과연 내가 그저 그렇게 살아왔구나 하는 것을

    그대로 묘사해주시니 부끄러움에 식은땀이 날 지경입니다.

    숱하게 좋은 기회를 허송했었고.....나도 모르게 그런 인간으로 그렇게 살았구나.....하는 느낌입니다.



    오늘 부터라도 조금씩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품위있는 인생을 보낼 수 있도록

    마음을 살찌우는 체험을 만들고 겪어나가는데 관심을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돈이 많고 적고를 떠나 허락하는 범위안에서 품격을 키우는 것은

    내면의 풍요라고 생각합니다.

    먹고살만한 나라가 되었어도 늘 사람들은 헐벗은 시절을 기억하고 거기에 자기를 구속하는게 아닌가

    합니다. 몇시간이 걸리는 식사...... 많은 것이 없더라도 주변의 사람들을 함께 불러서 같이

    즐길 수 있는 그런 풍요로움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갑자기 '레옹'이 다시 보고 싶어집니다.......


    감사합니다.
  • 한승희 2013/03/28 [08:53] 수정 | 삭제
  • 컬럼 쓰신 것에 메일로 반응을 자주 받으시는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외국에서 15년 정도 직장 생활하면서, 글로벌 식사 매너에 대한 컬럼 쓰신것 내용에 너무 공감하는 것이 많아 메일 드립니다. 너무 중요한 문제인데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이 없거나, 아니면 문제를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에 아주 명료한 글 써주셔서 좋았습니다.

    처음에 외국에 왔을 때 저도 개인적으로 경험했던 것이었고, 지금은 다른 분들을 보면서 문제들이 보이기 시작한 주제 였습니다. 나라는 경제적으로 강대해 가는데 우리의 매너는 그 경제발전을 따라가지 못해 안타까왔는데, 명쾌하게 문제를 집어내어 주시고, 사진도 너무 잘 선택하셔서 기사 잘 보았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승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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