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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民國 ‘막말’ 정치인, 國技 ‘태권도’ 근처라도 얼쩡거렸더라면…
태권도 예(禮)와 도덕(道德)의 관계
 
김용철 박사 기사입력  2013/12/16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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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철 박사.     © 한국무예신문
우리 태권도인들이 끊임없이 추구하는 태권도 수련의 궁극적 목적인 자아실현을 위해서는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 시켜야만 한다.
 
첫째는 태권도인 각자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실현이며, 둘째는 태권도인 모두가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삶의 가치실현이다. 태권도인 개인의 자아실현은 개인이 추구하는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를 수는 있지만,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행복과 평화로운 삶을 위한 공헌과 희생정신은 우리 태권도인들의 공통된 자아실현의 궁극적 목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태권도인 개인의 가치 실현을 위해서 건, 아니면 태권도인 전체의 가치실현을 위해서 건, 무엇보다 완벽한 도덕자로서의 인품과 인격을 갖추고 있어만 가능하다.
 
태권도인들이 태권도 수련시는 물론 수련 후에도 변함없이 실천하려 애쓰는 예(禮)의 몸가짐과 마음의 자세가 바로 이러한 완벽한 도덕자로서의 자격을 갖추기 위한 가장 기초적이며 기본적인 도덕수양(修養)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또한 유학에서 추구하는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세상을 평화롭게 함)의 첫 행보인 수신(修身)을 구체화 시키는 수단이기도 하다. 이처럼 태권도의 예(禮)와 도덕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
 
독일의 교육자 헐버트는 “교육이 하는 유일한 일과 전체의 일을 하나의 관념으로 매듭지을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도덕이다. 도덕은 보편적 인류 최고, 최상의 목적이라 생각되어지기에 또한, 교육의 최고 목적이 되기도 한다.”라고 했다. 이처럼 도덕은 교육의 최고 목적이 되기도 할 뿐만 아니라, 보편적 인류 가치의 실현을 위한 필요조건이 되기도 한다. 태권도 수련을 통해 예(禮)를 배우고 이를 생활 속에 실천하고 자 하는 목적은 바로 독일의 교육자 헐버트가 말한 교육의 최고 목적인 도덕심을 함양하기 위함이라 말할 수 있다.
 
예(禮)와 도덕의 실천
 
위와 같이 태권도를 통해서 배우게 되는 예(禮)와 도덕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분리해 놓을 수 없을 만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도덕은 서양의 윤리학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사람이 서로 화목(和睦)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과 확실하고 건전한 인생관과 가치관을 수립할 수 있는 행동규범 전체를 가르친다. 도덕과 윤리는 모두 사회 구성원간의 관계 작용을 조절할 수 있는 공통성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도덕과 윤리는 모두 예(禮)의 풍부한 사고와 행위 체계 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공자와 순자를 대표로 한 원시 유학의 핵심인 예(禮)의 사상은 수천 년간 한국의 중심 사상으로 유입되어 한국인의 교화와 도덕수양에 지대한 역할을 해왔다. 현대 사회생활 중에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는 예절은 봉건사회처럼 엄격하고 자질구레하며 복잡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우리의 사회생활에서 중요한 작용을 하고 있다. 사회생활 중에 필요한 예(禮)의 도덕과 윤리적 기능은 결코 사라질 수 없는 영원한 것이며, 예(禮)의 사회적 역할은 변할 수도 위축되어 질 수도 없다.
 
예(禮)와 도덕은 모두 실천에 그 근본을 두고 있다. 만약에 예(禮)와 도덕이 이론만을 중시하고 실천을 경시했다면 예(禮)는 이미 현실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禮)와 도덕을 확실히 이해하려면 태권도 수련시 도장에서 요구하는 태권도 예절을 무엇보다 철저하게 지켜 나가려는 자세와 습관이 필요하다. 예를 들자면, 옷을 단정히 입는 것과 몸을 청결히 하는 것은 예(禮)를 실천하는 시작이라 할 수 있기에 도장에서 도복을 단정히 입고 띠를 반듯하게 매는 것을 시작으로 예(禮)를 실천해 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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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12/16 [07:17]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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