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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무예에 대한 고찰 (A)
인도의 고대무예의 특징과 범주들
 
이호철 박사 기사입력  2016/04/10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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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호철 박사     ©한국무예신문
우리가 언급하는 동양무예는 주로 중국무예를 진원지로 한 한국무예와 일본무예를 개념으로 이해라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중국의 고대 무예에 영향을 끼친 것이 인도무예라는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간과하고 있다. 따라서 필자는 인도무예에 관련된 국내외 서적들과 관련 자료들을 읽고 분석하여 정리한 인도무예에 대한 고찰한 내용들을 다음과 같은 연재형식으로 본 칼럼에 대해서 소개하려고 한다.
  
                 1. 인도의 고대무예의 특징과 범주들
                 2. 인도의 레슬링들
                 3. 인도의 다양한 무기술들
                 4. 인도지역에 따른 무예의 종류들
                 5. 인도무예와 한국무예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의한 비교분석
  
중국문명과 인도문명은 아시아 문명의 중심적인 두 축을 이루고 있다. 중국문명권 영향권에 한국, 일본 등의 동북아시아와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의 동남아시아지역이다. 반면 인도문명권은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의 동남아 지역과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 등의 서남아시아 지역 등이다.
 
인도는 세상에서 가장 인구가 밀집한 민주주의 국가이며 지리학적으로 7번째로 큰 땅을 가지고 있는 국가이다. 동북쪽으로는 중국, 네팔, 부탄과 국경을 접하고 있고 동쪽으로는 방글라데시와 미얀마, 그리고 서쪽으로는 파키스탄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인도는 네 개의 주요 세계 종교인 시크교, 불교, 힌두교, 그리고 자이나교가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그 종교들의 오랜 역사와 다양한 문화는 많은 철학들, 위대한 사상가들 그리고 용감한 전사들, 그리고 영향력 있는 무술가들을 잉태시켰다.
 
인도는 자주 동양 무예의 출생지로서 여겨진다. 이 주장이 역사의 구체적인 실증적 자료의 부족으로 비록 엄격하게 사실이 아닐지라도 많은 사람들이 말하길 많은 오늘날의 무술들은 달마(중국말로는 따모)라고 불리는 인도의 불교승의 동작들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서기전 440년에 Kanchi(칸치)지역, 그 당시엔 남인도 팔라바 왕국의 수도)에서 전사의 카스트 계급이었던 달마는 어린나이에 불교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고대인도 무예인 맨손과 무기를 다 쓰는 Kalarippayattu(칼라리파야투)에 능숙하였다. 그는 이후에 중국으로 건너가 지금은 선종이라 불리는 불교학파를 세워 전파했다.
  
 허난성 지역에 있는 송산에 위치한 소림사에 도착한 달마는 초기에는 입장이 불허되었다. 그러나 전설에 의하면 소림사 주변에 있는 동굴에서 9년 동안 면벽하며 수도했으며, 그 동안 묵음 수행을 했다. 이러한 달마의 헌신과 지혜를 깨달은 소림사 스님들은 그가 소림사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했다. 달마는 소림사에 머물면서 오랜 명상의 수도 후에 신체적 힘과 활력이 부족해 약해지고 병든 스님들을 강하게 하기 위하여 선의 사상들(원칙들)과 요가식 무술들을 가르쳤다. 이후에 달마는 신뢰를 받았고 어느 정도는 만족스럽게 'Yi Jin Jing'과 'Xi Sui Jing'이라는 책을 썼다. 이 책들은 효과적인 기공 수련에 관한 설명서이며 근대 소림쿵후의 기본을 형성하고 있다고 여겨지고 있다.
 
 인도의 다양한 물리적 환경들 이를테면 산악들, 광대한 평원들, 정글들, 그리고 사막들 등은 그 나라의 무예형성에 주요한 영향을 끼쳤다. 다양한 문화들 속에서 무예들은 지형, 종교적 믿음들, 그리고 각 특별한 지역의 철학적 수행들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역사적으로 인도 무예에 관한 내용들은 인도의 고전적 서사시 작품인 the Mahabharata, Ramayana, 그리고 the Rigveda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적인 문서들 이를테면 the Buddhacarita Sutra, Faiminiya Brahmana, 그리고 Saddharmapundarika Sutra 등 다양한 고전 작품들에 묘사되어있다.
 
인도무예에 관련된 제한된 활용 가능한 자료들을 분석할 때 유의해야 할 일은 무예전통에 관련되는 인도인의 신체관에 대해서 특히 명상 종교적인 연습들에 관한 언급한 내용들을 읽고 이해를 해야 한다. 가장 유명한 자료들은 Ayurvedic medicine과 Yoga(특히 Hatha Yoga)이인데 이들은 육체적인 건강뿐만 아니라 자유(moska)의 목적을 강조한다.
 
또한 the Ayurvedic 문학에는 인간 몸의 취약적인 부분들(급소들)인 marman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급소들에 대한 지식은 레슬링의 훈련에 격투기술이나 치료요법으로 적용되었다. 또한 Kerala(인도의 서남부지역)과 Tamilnadu(인도의 남부와 동남부 지역)에서 행해졌던 맨몸무예와 무기 무예의 수련 시스템에 활용되었다.
 
하지만 불교가 발생했던 시기(B.C. 500) 이전의 무예수련들에 대해서는 거의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이후에 선택적인 무예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록된 문서나 책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근대적 형태로 레슬링종류들(Binot, Kutshi, Masti, Vajra-musti, Skt)과 무기들(e.g., cilampam, Tamil; bana, lathi, pata, phari-musti, Skt)에 묘사한 것들이 있다.
    
고대 인도는 풍부한 역사만큼이나 부유한 국가였다. 그리고 인도는 역사적인 무역 루트들에 의해서 많은 제국들을 그 지역에 끌어들이는 원천지였다. 활발한 상업적인 교류는 많은 다른 근원지들로부터 새로운 종교적 사상들과 무기들 그리고 격투기술들을 인도로 가져오게 하였다. 예를 들어 레슬링은 불교의 출현 전에 이미 인기 있는 스포츠였던 사실은 외부 세계 이를테면 그리스, 페르시아 또는 로마의 사람들과 접촉을 가졌다는 증거이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무예사에 있어서 인도무예가 서양무예의 근원지인 로마와 그리스 지역과의 무예들과 상호 영향을 끼쳤을 흥미로운 가능성에 대해서 유추해 볼 수 있다.

1. 인도무예의 특징
 
  (1) 고대왕조의 역동성을 반영하고 있다
 
 The Chola 왕조와 Tamil Chera왕조의 역동성은 인도 무예의 발전에 아주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10세기에서 12세기까지 이 왕조의 권력의 절정에 다다른 시기 동안에는 Chola왕조는 아시아에 걸쳐서 특히 남인도지역에서 문화적, 군사적, 경제적으로 powerhouse(발전소, 원천지)였다. 말레이 군도까지 확장한 타밀왕조는 탁월한 해상활동을 통해 동남아 지역 아시아 - 특히, 중국- 그리고 중동지역에 까지 활발한 무역이 이루어졌다. Chola왕국의 군국주의적 (전쟁)기술이 뛰어난 이유는 이렇게 외부세계와의 왕성한 교류에 기인하였다.
 
Chela 왕국의 군사력과 전투력에 관한 진보된 기술은 외부세계와의 접촉이 주된 이유였다. 또한 남부지역의 인도를 지배했던 Tamil Chera왕국은 15세기까지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이집트와 많은 아랍왕국들과의 활발한 무역이 이루어졌다. 향료, 보석, 재목, 비누 등과 같은 물건들의 거래를 통해 무기, 갑옷, 맨몸격투술등을 망라하는 전투기술들도 필수적으로 이 시기에 전해졌다.
 
  (2) 종교적 연관성들이 강하다
 
  오늘날 인도에서 인기 있는 많은 무예들은 종교적 운동들과 강력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Gatka(가트카)는 시크교와 연관된 무예로서 Puniab(푸니아브) 지방에서 일반적으로 수련되어져 오고 있다. 가트카 무예는 지금은 그 지역의 다른 종교적 기반을 가진 무예의 전첨 비록 축제나 대중적 집회에서 전통음악에 맞추어 행해지는 스포츠나 시범적인 성격을 띤 무예로만 단지 수련되고 있지만 원래는 시크교 전사들이 전쟁터에서 그들의 지역사회를 보호하기 위하여 사용된 전쟁 무예였다.
 
불교의 출현으로 인해서 격투활동에 대한 규제의 조치가 이루어졌다. 불교 법전인 Cullavagga에서는 레슬링이나 주먹다툼, 활쏘기나 검술의 사용을 금했다. 하지만 이런 조치들이 효과적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많다. 반면에 무슬림의 정복시기인 13세기와 14세기에 이슬람교의 의식에 맞춘 근대식형태의 레슬링의 형성이 이루어지는 등 이슬람시대 동안에는 격투술(무예)들이 번성하였다.

2. 인도 무예의 범주들
 
 (1) 권법 격투술

 주먹으로 하는 격투는 'the Rig Veda'와 다른 고전 작품들 속에서 언급되어지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복싱이 고대에 행해졌다. 시합은 종종 파이터 중의 한 사람이 죽음으로써 끝이 났다. Valmiki's Ramayana에서 Vali는 Dundubhee를 죽였다. 그리고 the Mahabharata epic에서는 Krishna와 Jambuvant 그리고 Bheem 그리고 Keecham과의 복싱 결투장면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오늘날 수련되는 Musti-yuddha(Muki Boxing)은 Verdic 고대 서사시에서 언급하고 있다. 개인의 격투 용맹성에 관한 이야기(우화)들도 풍부하다. 예를 들어 The Mahabharata는 단검으로 무장한 전사들이 사자들을 무찌르거나 Shri Krishna가 너무 강하고 기술이 노련해서 한 마리의 코끼리를 정복하는 일화들을 묘사하고 있다. 
  
1890년대에 서양복싱은 인도의 거의 모든 옛 타입의 복싱을 잠식하고 대체했다. 단지 300여년 이상을 benares지역에서 수련해 온 Muki 복싱만이 존재하고 있다. 오래 전에 인도정부는 이 위헌한 Muki 복싱에 대한 금지령을 내렸지만 영국식민지 시대에 한 유럽 경찰청장에 의해서 재개되었다. 그러나 Benares 지약이외에서는 크게 인기를 끌지 못하였다.
 
개인전(이전에는 단체천도 있었다)이 매년 개최되었는 데 부상이 빈번하고 중상을 입었다. 따라서 개인적인 싸움은 금지되었다. 복서들은 돌로써 그들의 손을 연마하여 강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돌이나 코코넛을 부술 수 있었다. 1970년대에 가장 유명한 복서는 BNarayanguru Blambhat Deodha과 Lakshmanguru Balambhat Deodhar이었다. 이 둘은 한 번에 12명을 무찌를 수 있었다. Muki 복싱은 인도나 아마도 어느 지역에서도 맨몸격투에서 가장 거칠고 잔인한 격투술이다. 발차기가 없는 이 복싱은 실전적인 효과성을 위하여 발차기에 의지하지 않는 큰 타격을 주는 격투술이었다.
 
 Binot이란 맨몸격투술은 오늘날 거의 수련되어지지 않는다. Binot는 힌두어에서 Bin은 ‘아니다’이고 ot는 ‘보호라는 어떤 것’이란 의미인대, 모든 종류의 무기로부터의 맨몸의 보호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인도의 황금시대에 맨몸의 인간들이 야수들을 제압했다는 역사적 기록도 있다. 로마축제 때에 맨몸으로 사자를 물리친 사람은 Androcles였다. 그러한 파이터들은 ek-hat'h와 같은 무술림시대의 문학에도 언급되어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맹수와 싸울 때 한 팔만을 사용했다고 나와 있다. 오놀날의 binot는 다양한 무기에 대항하여 양팔을 사용한다. 배우기가 어렵고 연습하기가 매우 위험하다. Binot는 아마도 현존하는 이러한 격투술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관절기술

 관절기술들은 무기를 가진 상대방을 죽이지 않고 제압할 때 사용되었다. bandesh와 같은 관절기술 체계는 수백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것은 무기술에 있어서 중요한 기술적인 부분이 되었다. 근접거리에서 무기술은 팔이나 다리 관절이나 목관절 등의 사용에 아주 효과적이었다. 경쟁시합에서는 상대방의 무기를 탈취한 선수가 승자가 되었다. 수백 개의 관절기 기술들이 맨몸무예 격투술에서 사용되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분의 무기술 연습에서 관절기술은 상대방을 죽이지 않고 제압하거나 물리치는 데 있어서 전문적인 기술들이 되었다.
 
(3) 레슬링

  인도의 레슬링에 관한 초창기의 역사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mallakrida, malla-yuddha, 그리고 niyuddha-krida 등과 같이 스포츠성을 지닌 레슬링의 명칭이 알려진 것과 레슬러들이 시합에서의 승리에 대한 상품이나 대가를 받기 위해서 시합들이 개최되는 장소들로 옮겨 다녔다는 역사적 사실들만 아는 것이 고작이다. 하지만 중세 이후에는 인도의 어느 다른 무예들보다 훈련내용들과 규칙들, 그리고 기술들에 대해서 레슬링이 가장 자세한 내용들을 언급한 기록물들이 많은 것이 인상적이다.
 
레슬링은 수세기동안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국가적 스포츠로 존재해 오고 있었다. 인도 대륙에서 레슬링은 불교가 시작(서기전 500년)되기 이전에 번창하였고 심지어 아리안족의 침입이 있었던 서기전 1500년대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연스러운 운동의 형태로 사용되어졌다. 왕족들 앞에서 상대방이 죽을 때까지 격투를 벌였다. 왕들도 격투대회를 후원했을뿐 아니라 직접 격투술을 수련하기도 했다. 고전적 서사시인‘Rig Veda, Ramayan and mahabharata'에서는 그 시대에 개최되었던 거친 실전적 격투들을 화려하게 묘사하였다. 그 당시에는 전사들이 침대에서 죽는 것을 죄악으로 여겼다.
 
인도의 고대 레슬링은 오늘날 극히 드물게  살아남아서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형식의 레슬링 시합은 레슬러들에 대한 영향 때문에 매년 단지 2번만 개최된다. 이 당시에 이러한 원시적 형태의 레슬링만 단지 수련되어진 것은 아니었다. 레슬러들은 부유한 후원자를 끌어들이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구경꺼리와 활동으로 그 시대에는 유행적으로 우세한 종목이었다.

(4) 무기술

 인도는 상당한(아주 다양한) 범주의 고대로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무기술 기법들을 가지고 있다. 고전 문학들은 숙달되고 기량이 뛰어난 무기술에 대한 언급으로 가득차 있다. 가령 한때는 가장 인기가 많았던 궁술(양궁)은 오늘날 인기가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수련하고 있다. 이러한 궁술의 비인기는 애석할 일이다 왜냐하면 the Taksha-shila(군사훈련으로 유명한 고대의 불교대학)에서 기원전 7세기경에 가르쳐졌던 최우선적인 과목이 궁술이었기 때문이다. 전쟁터에서 사용하는 무기술들도 이를테면, 검, 단도, 창, 스틱(막대기), 곤봉과 전곤 등의 격투기법에 대해서 체계 있게 가르쳤다.
         
 The Bankulis라고 불리는 검사들은 두 손으로 길이가 긴 검을 아주 비상하게 사용하는 묘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 검은 손잡이 부근에는 곧바로 뻗어있지만  칼끝을 향해서 구부러져 있는 특이한 형태의 검을 사용했다. 그러나 그들은 방패를 사용하지 않았다. 다른 검투사들은 다양한 종류들의 단검과 칼을 사용하였다. 각각의 계급은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또한 다른 격투술을 시행하였다. 궁궐에는 언제나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수천 명의 검투사들이 있었다.
 
몇몇 종류의 검투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각자 그들만의 놀라울만한 검술의 묘기들을 수행하였다. 격투를 할 때에는 그들은 빠른 속도와 민첩함을 보여주면서 몸을 웅크리거나 위로 날아오듯이 뛰어 오르는 기술과 용기를 함께 보여주었다. 어떤 검투사들은 방패를 사용했고 Lakrait라고 불리는 검투사들은 곤봉들을 사용하였다. 다른 이들은 결코 방어를 하지 않고 공격만 했으며 한 손으로만 싸우는 이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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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4/10 [22:05]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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